수업 철학에 대해

수업 철학에 대해

세상에는 두 종류의 교육이 있다.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교육인 ‘가르쳐서 기르는’ 교육이 있고,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교육인 ‘체험하면서 배우는’ 교육이 있다. 전자는 가르쳐서 기르는 ‘교수 활 동’을 교육의 우선적 특징으로 삼고 있어서 누구나 쉽게 동의하리라는 점에서 교육에 대한 익숙한, ‘홈 패인’ 사유라고 볼 수 있다. 반면, 후자는 체험하면서 배우는 이른바 ‘학습 활동’을 교육의 일차적 특징으로 기술하 고 있어서 일반인들이 동의하지 쉽지 않다는 점에서 교육에 대한 낯선, ‘매끄러운’ 사유라고 볼 수 있다. 교육 에 대한 ‘홈 패인’ 사유와 ‘매끄러운’ 사유는 서로 대척점에 있는 두 종류의 교육을 보여준다. 

(중략) 어떤 삶을 살 것인가?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서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동일한 것이 반복되는 안온 한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차이가 한 순간도 멈춤 없이 생성되는 역동적인 삶을 살 것인가? 동일한 것이 반복 되는 삶은 ‘홈 패인’ 공간에 갇혀 사는 삶이라는 점에서 습관적 삶이자 노예의 삶이다. 이에 비해 차이가 생성 되는 삶은 ‘매끄러운’ 공간 위에서 어디로 흘러갈지 알 수 없는 모험 그 자체를 살아가는 삶이라는 점에서 매 순간 긴장되지만 흥미진진한 주인의 삶이다. 

홈 패인 공간을 살아갈 때 우리는 사유할 필요가 없다. 선배들의 삶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반복된’ 삶을 살면 된다. 그러나 매끄러운 공간을 살아갈 때 우리는 매 순간 누구도 아직 서본 적이 없는 지점에서 새롭게 사유해 야 하고, 누구도 가본 적이 없는 낯선 ‘노마드적’ 삶이 주는 두려움에 맞서야 한다. 

미래 세대에게 홈 패인 삶을 살도록 할 것인가, 아니면 매끄러운 삶을 살도록 할 것인가? 미래 세대에게 반복 된 삶을 살도록 교육해야 하는가, 아니면 노마드적 삶을 살도록 교육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에 직면할 때 우 리는 교육이 단순히 방법적 원리나 기능적 활동이 아니라, 삶의 가치와 방향을 선택하는 심미적이고 윤리적 인 활동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유함이 없이 반복적인 삶을 살도록 교육할 것인가, 아니면 끊임없이 사유 하면서 차이생산적인 삶을 살도록 교육할 것인가?

-<들뢰즈와 교육:차이생성의 배움론>, 김재춘, 배지현, 학이시습, 서론 발췌.

안녕하세요, 새봄입니다.

위 인용문은 제가 수업에서 지향하는 철학을 담고 있습니다.

자크 데리다는 단어가 맥락-context, traces에 따라 변화하기에 고정된 의미가 없이 오염 contaminated 되어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독해법을 가르치는 저의 입장에서, 이는 언어에 있어서 '맥락'이라는 속성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동하는지 보여주는 근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독해법을 가르치다보면 단어를 고정값으로 받아들여 그 통념을 깨지 못해, 이해의 능력 또한 결여되어가는 학생들의 모습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 시점 한국의 주류 독해 교육법은 ‘홈 패인’ 방식으로, 언어를 정의내리고 그 안에 가두어놓는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데리다에 따르면 의미의 연쇄 작용은 차연 différance 입니다. 불안정한 시니피에-섬세한 차이를 맥락의 흐름 가운데 선명하게 이끌어내는-interpretation 능력, 그것이 바른 독해, 언어 '이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프레이리가 비판하는 은행저금식 교육이란 교수가 철저하게 학생을 객체로 만들며, 자신의 권위와 직업상 권위를 혼동하 며 학생을 억압하는 데에 자신의 권위를 남용하는 것입니다. 랑시에르가 말했듯이 학생이 지닌 무지라는 허구성을 신화화하며 착취하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은행저금식 교육은, 지금껏 저를 포함한 여러분이 받아온 ‘홈 패인’ 교수 활동이겠지요.

한편 랑시에르는 소크라테스가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만 질문한다'고 평가하며 훌륭한 교육자는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 질문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미 우리 안에는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능력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언어 수업에 있어서 무척 중요한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하고 있는 수업의 주된 방식이라고도 여깁니다.

저는 학생의 내재된 잠재성을 믿고, '문제제기식-소통하는 교육'을 지향하며, '아는 것'에 대해서도 질문을 하겠지만 '모르는 것'에 대해서도 질문하며 함께 답을 찾아나갈 것입니다.

수업에서 한 지문을 대할 때, 저는 <써있지 않은 것>에 대해 질문을 자주 하는데요. 그럴 때 '같이 생각해보자, 상상해보자.'라고 합니다. 정답이 없는 질문이기에 어디까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지 과연 어느 정도까지 이 지문을 확장해볼 수 있는지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글을 잘 읽는다는 것은 '써있는 것'을 넘어서서, 써있지 않은 것까지 나의 내부로 받아들이며 활용하고 확장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제가 지금 데리다, 프레이리, 들뢰즈를 인용해서 수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요.

저는 기본적으로 '언어 교육을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무엇을 배워야하고, 결과적으로 어디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 또한 자주 던져볼 수 있는 시간을 만들겠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끝내 정답은 아닐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방식으로 읽었나'라는 두 번째 질문을 통해서, 제가 모르고 있는 학생만의 방식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우리가 모르는 빈 자리를 대화하며 채워가길 바랍니다.

그렇게 합치고 흩어지며 확장된 사고가 여러분을 가장 좋은 곳에 데려다줄 것이라 믿습니다. 이것이 제가 지금까지 지켜 온 독해 수업의 철학이며, 가장 효과적으로 목표에 도달할 수 있게 만들어준 방식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저와 함께 주어진 글의 모든 세포를 ‘가장 적확히’ 발라내고, 그것을 다시 풀어주는 과정을 배우게 됩니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방식으로, 정확한 유연함의 사고를 훈련할 겁니다.

수업에서 만난다면, 기대하는 마음으로 다정하게 때로는 치열하게 대화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교육이 단순히 방법적 원리나 기능적 활동이 아니라, 삶의 가치와 방향을 선택하는 심미적이고 윤리적인 활동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자유로운 삶의 가치를 선택해주신 분들께
새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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